따뜻한 디자인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따뜻한 사람이 있습니다.
공익을 위한 디자인,
다양한 이들이 함께하는 사회를 위한 다채로운 디자인으로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디자인하는 사회적기업 '글자와 기록사이'의 최혜진 컬처디자이너를 소개합니다.
반갑습니다. 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공익을 디자인하다, 세상을 기록하다, 세상을 바꾸다’'라는 비전과 미션을 가지고 디자인과 공익성의 접점을 찾는 사회적 기업 ‘글자와 기록사이’의 최혜진 대표입니다. 디자인 에이전시이자 사회적기업으로서 디자인을 매개체로 한 여러 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독립출판, 나눔굿즈, 사물인터넷 결합 굿즈 개발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시네요! 차근차근 여쭤볼게요. 앞에서 소개해주셨듯 '디자인'을 매개로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가요?
기본적으로 비영리단체나 사회적 기업이 디자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장벽을 낮추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비영리단체나 사회적 기업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디자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컨설팅을 지원하고, 자활 기업에 저비용으로 디자인 서비스를 기부하고 있죠. 또한 ‘디자인 투자’라는 서비스를 통해 디자인을 공익적으로 풀어가려고 노력하는 중이기도 해요.
‘디자인 투자’는 비영리 단체나 사회적 기업 등이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프로젝트의 디자인을 제공하는 대신 수익의 일정 부분을 나중에 돌려받는 투자 방식이에요. 사실, 마음만 같아서는 사회적 기업에게 디자인 서비스 가격을 아주 많이 낮춰 제공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하면 기존 디자인 사업 구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디자인 투자라는 방식의 공익적 방법을 고안하게 되었습니다.
디자인 투자라는 개념이 신기하네요, 왜 이런 디자인 사업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저는 상업 디자인회사에서 10년 넘게 일했어요. 당시 비영리 단체나 사회적 기업과 작업을 하며 좋은 콘텐츠로 좋은 일을 하려해도 디자인적인 부분의 가격 장벽이 높아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사업을 하다보면 누구나 브로셔나 안내 책자가 필요하고, 상품을 디자인해야하는 일도 생기는데 출판물 디자인이나 상품디자인 모두 단가가 높은 편이거든요. 가격적인 부분에서 어려움을 느끼는 분들이 좋은 퀄리티의 디자인을 만나 사업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서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정말 좋은 취지네요. 그렇다면 이번에는 '글자와 기록사이'의 독립출판 사업을 소개해주시겠어요?
저희 회사의 독립출판은 ‘글자와 기록사이’의 시선을 담은 출판물들이에요. 일상의 역사, 우리 주변의 이야기들을 기록하는 사업이죠. 예전에 책을 디자인하는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책과 책 문화에 대해 관심이 생겨서 독립출판사업을 진행하게 됐어요.
처음 시작은 동내 안내서인 ‘마포 이야기’였어요. 지자체에서 발행하는 안내서가 천편일률적이고 딱딱한 경우가 많잖아요. 그래서 조금 더 재미있는 동네 안내서를 출판해보자는 취지로 '마포 이야기'를 만들었죠. 동네의 오랜 역사들, 그곳에서 오래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참 재미있거든요. 그래서 동네의 사라져가는 이야기들,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인터뷰를 담아 사람 냄새 나는 지역 안내서를 만든거에요. 외지인들이 이 책 하나를 가지고도 그 동네의 매력을 알아보고, 동네를 탐방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출판해낸 책이에요.
‘마포 이야기’의 이후에 출판한 기록물은 동경의 책방 문화를 다룬 ‘동경 책방기’였어요. 요즘에는 우리나라도 독립서점들이 많이 늘어났지만, 사실 이 문화가 먼저 시작된 것은 일본이거든요. 일본의 대도시인 도쿄의 책방들이 독서 커뮤니티와 동네 문화 커뮤니티로 기능을 하는 것을 보고 우리나라에도 그 흐름이 들어올 것으로 생각해서 도쿄의 동네 서점, 갤러리 서점 등에 관련한 기록을 출판했던 거죠.
저 개인적으로 '한글'에 관심이 많아서 필사책과 노트를 출판하기도 했어요. 필사 책의 경우, 필사한 부분을 사람들과 나눌 수 있게 왼쪽에는 시를 배치하고, 오른쪽에는 필사 공간을 배치했어요. 그리고 오른쪽 뒤편에는 편지를 쓸 수 있도록 편지지를 디자인했답니다. 오른쪽에 있는 필사 부분을 다 오려내면, 한 권의 시집이 남을 수 있도록 디자인한 거에요. 한글의 아름다움에 대해 사람들이 더 잘 알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이렇게 디자인을 하게 되었어요.
홈페이지를 보니 ‘기록형 독립출판’이라는 말이 있더라고요. ‘기록형 독립출판’이라는 말이 조금 생소한데요. 조금 더 설명해주시겠어요?’
학술적으로 뒷받침되는 말은 아니지만, 저희가 ‘일상의 역사’를 ‘기록’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서 자체적으로 쓰는 말이에요. 동네 이야기를 기록할 때 ‘안내서’라는 개념에 충실하기 위해 저희의 감상이나 주관을 배제하고 존재하는 이야기들을 기록했거든요. 우리 일상에 존재하는 이야기들이 누군가에게 남겨야 하는 ‘기록’이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하는 의지가 담긴 뜻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렇군요. 이러한 출판사업을 나눔굿즈로 연결하기도 하신다면서요?
네, 일단 나눔굿즈에 대해 설명드리자면 판매액의 일정 부분을 사회에 기부하는 굿즈들(goods)이에요. 다양한 굿즈들을 시도했었는데요, 저희의 독립출판물들도 나눔굿즈로 활용하고 있답니다. 위에서 설명한 필사책과 노트를 학교 밖 청소년이나 탈북청소년 등의 필사 교육이나 청소년 인턴십 프로그램 등에 사용할 수 있도록 나눔 굿즈로 기부하고 있습니다.
청소년 교육 사업도 진행하시나요? 교육 관련한 활동도 궁금해요.
디자인의 공익성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나서다 보니 자연스럽게 교육에 관심을 가지게 돼요. 미국의 경우 학생들에게 디자인을 위한 교육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나라는 진로교육과 미술교육은 진행하지만 디자인 교육은 잘 실행되고 있지 않거든요. 그래서 미국과 같이 디자인적인 방법으로 진로를 생각해 볼 기회가 있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직접 교구와 교육과정을 준비해 지역아동센터에서 교육을 진행했었습니다.
디자인의 어원인 라틴어’ ‘데시그나레 designare'는 '계획하다'라는 뜻이에요. 대부분 디자인이라고만 하면 예쁘게 꾸미는 것이라고만 생각하는데, 디자인의 본 뜻은 ‘계획하는 것’이라는 것을 교육을 통해 청소년에게 알려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디자인 교육과 함께 성격 검사, 미술 교육, 인생 그래프 그려보기 등 다양한 진로교육을 진행해요. 청소년이 어떻게 ‘자신의 미래’를 ‘디자인’하고 싶은지 함께 생각해본 거죠. 교육을 진행할수록 아이들이 ‘디자인이 뭐지?’라고 물어봤을 때 ‘계획하고 실행하는 거요!’라고 답하니까 정말 뿌듯하더라고요 (웃음). 앞으로도 디자인과 진로교육을 함께 실현해서 ‘인생에 대한 디자인’에 관련한 수업을 더 발전시키고 싶어요. 툴킷도 개발할 예정이고요.
사물인터넷과 관련한 사업도 궁금해요.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사물에 센서를 부착해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인터넷으로 주고받는 기술이나 환경
사물인터넷(loT)은 미래를 위해 다양한 기관에서 여러가지 방법으로 고민하고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처음에 이 사업을 시작한 계기는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이었어요. 당시 세 모녀가 키우던 반려묘가 함께 죽은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거든요. 생각해보니 요즘은 1인 가구가 워낙 많아서 자신이 죽었을 때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어떻게 챙길 수 있을지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반려견, 반려묘 제품을 개발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사물인터넷을 결합한 사료 그릇을 고안해냈어요. 사료 그릇에 센서를 부착해 밥을 제때 주지 못하면 다른 사람에게 연락이 가도록 하는 거죠. 그런데 생각보다 이 사료 그릇을 실현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초점을 조금 옮겨서 이런 아이디어를 약통에 접합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약을 먹는 행위도 규칙적이어야 하는 행위니까요. 그래서 스마트 약통을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먹어야 하는 약을 먹지 않으면 자신이 지정한 사람에게 연락이 가는 형식으로 작동하는 제품이에요. 현재 프로토타입까지는 개발했고, 상품화를 위해 마지막 단계를 진행하고 있어요. 반드시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시장성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사업을 진행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희가 이 기술을 새롭게 개발하거나 그런 건 아니에요. 이미 존재하는 기술들을 조합해서 사물인터넷 제품을 만들고 있는 거죠. 하지만, 기존의 제품들이 단순히 사람의 생태 신호를 파악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면, 저희는 고독을 다른 타인과 연계해 해결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1인 가구가 많아지는 현대 사회에 정말 필요한 활동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이 사물인터넷 제품 사업을 발전시키고 싶으세요?
현재 스마트 약통이 비용 문제 때문에 아직 양산 전 단계에 멈춰있는 상태에요. 그래서 그 전 단계로 앱부터 시작해볼까 합니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한다는 컨셉을 유지하고, 나의 규칙적인 활동이 없다면 지인에게 연락이 갈 수 있는 앱을 개발해서 출시해볼 예정이에요.
앞서 말한 것처럼, '글자와 기록사이'가 고민하는 loT 제품의 중심에는 사물인터넷 기술과 관련한 네트워크 구축이에요. 해외 선진 디자인기업들은 사회적 기업과 IT 기업들이 융합해서 함께 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우리나라도 사회적 기업과 IT 기업들이 서로 신뢰하고 협동한다면 더 좋은 사업을 많이 진행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더 나아가서 저희가 가지고 있는 사물인터넷 관련 기술을 다른 사회적 기업과도 나누고 싶어요. 저희가 먼저 시도를 해보고,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진행된다면 다른 사회적 기업과도 나눌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정말 필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글자와 기록사이'의 앞으로의 활동 계획과 궁극적인 목표가 궁금합니다.
해오던 것들을 계속 해나가는 것이 가장 주된 목표에요. 나눔굿즈 활동도 계속 진행하고, 독립출판으로 냈던 출판물들의 후속작도 몇 개 기획하고 있어요. 지역 안내서 같은 경우에는 서울의 구가 25개인데 기회가 되면 다 내보고 싶어요. 동네 이름들이 도로명 제도가 도입되면서 많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사라져가는 지명에 대한 기록도 함께 진행하고 싶어요. 한글 작품이나, 동네의 문화유산에도 관심이 많아서 그쪽의 출판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더하여, 책과 책을 둘러싼 문화들을 촉진하고, 이에 관련한 굿즈들을 만들어 캠페인을 진행하는 것이 목표예요. 궁극적으로 디자인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저희가 던지고 싶은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글자와 기록사이' 같은 사회적 기업을 꿈꾸는 창업가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사회적 기업을 운영한다는 것은 소소한 작은 승리들이 삶의 방식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항상 일을 하다 보면 목이 마르고, 작은 승리는 있는데 큰 승리를 맛보기는 힘들죠. 언제나 기쁨과 슬픔이 공존한다는 것을 유념하고 시작했으면 좋겠어요. 힘듦 사이사이에 있는 소소한 승리들에 힘을 얻고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사회적 기업에 도전해보는 것도 좋을 거라고 생각해요.
한 가지 꼭 조언해주고 싶은 것은, 창업은 생존과 관련이 된 문제이기 때문에 기업을 이끌 수 있는 역량이 안 되는 상황에서 의도만 가지고 창업을 시작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이에요. 사회적 기업도 엄연히 기업이기 때문에 철저히 준비해야 하고 역량도 필요하죠. 사회적 기업 제도가 10년이 되었기 때문에 데이터가 꽤 축적되어있으니 그런 자료들을 충분히 살펴보고, 국가나 지자체에서 실행하는 인큐베이팅 프로그램들도 참여해보면서 자신이 사회적 기업과 성향이 맞는지, 잘 이끌어나갈 수 있을지 알아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글자와 기록사이에게 '디자인'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위에 말씀드렸듯이 디자인이라는 것은 계획하고 실행하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저희에게 디자인이란 저희가 하고 있는 공익적인 활동들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모든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디자인을 통해 사람들에게 우리의 일상을 더 재미있게 기록할 수도 있고, 사람들간의 네트워크를 만들어나갈 수 도 있는거죠. 좋은 생각을 계획하고 실현하는 '좋은 디자인'을 해서 사회에 보여주는 것이 저희의 목표에요. 디자인이 멀리 있지 않고, 우리의 삶에 항상 녹아들어있는 것이라는 사실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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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림 인턴_ 인터뷰
글자와 기록사이_ 사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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